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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철학/철학 입문/전체적인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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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을 처음 접하는 학습자에게: 철학은 처음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고슴도치처럼 여러분의 두뇌를 아프게 찌르지만 익숙해지면 여러분의 정신을 맑게하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철학을 처음 접하는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철학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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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가장 훌륭하게 답하려면, 우리는 철학이 무엇이 아닌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철학은 모든 다른 학문의 시작이며, 현재는 철학을 떠난 학문 분과인 물리학, 생물학, 문법, 수학, 기타 등등을 다루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love of wisdom=philosophia)이었다. 이 것은 오늘날에도 본질적으로 참이다. 오늘날의 철학은 인생의 매우 큰 질문들에 대하여 묻기 위한 하나의 길을 제공한다. 만약에 철학이 지혜를 추구하거나 지혜에 대하여 사랑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은 '탈레스'라는 이름의 사람과 함께 시작되었다.(소크라테스가 아닙니다, 탈레스가 맞습니다.) 탈레스와 그의 뒤를 따라 소크라테스 이전에 존재한 모든 철학자들을 "소크라테스 이전"(Pre-Socratics)이라고 부른다. 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주로 물질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었다.

소크라테스는 물질적인 세계를 실험하던 철학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그 것을 인간 그 자체에 적용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윤리학에 객관적인 기초를 주려고 시도했고 인식론과 형이상학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보다 좀 더 증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경험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세계에 플라톤이 구성한 형이상학적인 기초보다는 물질적인 토대을 제공하려고 시도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바로 이 삼총사가 철학의 토대 전체를 놓은 사람들이다. 이후 등장한 모든 철학자들은 이 사람들의 업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의 중심 주제들은 이 사람들의 생각에 이미 그 씨앗이 뿌려져 있었다.

교육 과제: 철학은 사용자께서 "하시는" 무엇이지, 간단한 공부가 아닙니다. 따라서 다음의 과제를 제대로 해내길 권해드립니다.:

뒤따르는 강좌에서와 같이 이 장에서, 사용자께서는 본인이 배운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좀 더 나은 일은 이 강좌에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배운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지만, 반드시 사용자께서 설명하시는 사상에 대해 듣는 사람이 나름대로 의견을 지닐 수 있도록 허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듣는 사람이 사용자께서 말씀하신 견해에 반대한다면, 사용자 분을 위해 매우 좋은 일입니다. 사용자께서 어떤 생각을 제대로 배우셨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실 수 있고,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토론이 시작됩니다. 자 보십시오, 사용자께서는 철학하고 계십니다! (혼자서 철학하기란 어렵습니다.)

다음 두 강좌가 사용자께 철학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제공할 것입니다.

입문: 철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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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같은, 어떤 학문 분야의 공부는 항상 그것의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철학자의 첫번째 어려움은 정확히 철학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다.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사람이 어떻게 철학 하는가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그/그녀가 철학을 할 때, 어떤 방법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또한 공부를 해 가면서 무엇을 참이라고 여기는지에 따라, 그/그녀가 내리는 철학의 정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철학자는 제 각기 다르게 그/그녀의 활동 분야를 정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철학하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이 곳에 내가 내린 정의를 적어본다:

'철학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인지를 구분하는 기술이다'.('Philosophy is the art of the separation among what it is REAL and what is UNREAL'.)

이처럼 고립된 문장은 아마도 그 자체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나는 철학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문장의 의미를 확대시킬 것이다.

수백만년을 거치며, 지구는 여러 동물 종이 살고 있는 곳이 되었다. 그 종들 중 일부는 수가 줄어들어 멸종되었고, 다른 종들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또 다른 종들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였다. 현재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 라는 종도 그들의 초기 조장으로부터 상당히 진화했다는 점에서 그 종의 생존을 안전하게 유지했다.(번역자 주:이 것은 진화론이라는 가설에 입각한 설명일 뿐이다, 창조론자는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다.)

이 종들의 변하지 않는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개인의 생존: 음식 찾기, 안식처(집), 포식동물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2. 종의 생존: 자손을 함께 생산할 배우자 찾기, 자손을 성년이 될 때까지 돌보기

결국 일부 호모-사피엔스 무리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했던 수렵생활 대신에 농사를 짓는 삶에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정착하여 직접 땅을 일구어 기른 것을 먹고 살게 됨으로써, 무역과 노동 분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사회화되고 생각하고 관찰하게 되었다. 알려지지 않은 현상에 대한 관찰을 거쳐, 이 사회의 구성원은 다음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1. 우리 자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2. 비는 어디에서 내리는 것일까? 비 내리는 것을 예언할 수 있을까? 왜 천둥과 번개는 때때로 같이 생길까? 와 유사한 많은 질문들.

오늘날 우리가 지닌 과학적인 시야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은 의인화라는 방법을 통해 중요한 사건들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허구적인 존재들이 사건의 원인이었지만, 사건 자체는 그들모다 더 큰 힘을 지닌 것이었다. 그렇게 신화가 탄생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날이 갈수록 문화적인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성장하였고, 기술은 우리의 이성을 돕기 시작했으며, 신화적인 설명은 자연주의적인 설명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특정한 현상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되풀이된다는 것이 관찰 결과 드러났고(예를 들면 계절의 변화), 한 현상이 일어나면 그 현상 뒤에 다른 특정 현상이 뒤따른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먹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 인간은 이러한 관찰들을 법칙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이 이러한 순환을 일으키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자연주의적인 설명의 성공은 우리에게 신화적인 설명에서 벗어나도록 했지만, 신화적인 설명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주는 느낌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은 철학하기 시작했다. 신화에 의존하지 않고 그러한 법칙들 너머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이 지점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의 철학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철학이 철학적 설명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방식으로 정의되는 것을 보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철학과 신화가 설명의 상반되는 두 종류라는 것을 알려준다. 철학적 설명은 신화적인 것이 아니며, 그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현실과 비현실로 돌아가자. 왜 우리는 서로 반대 위치에 있는 이 두 가지 단어로 나누어 말하기를 원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둘로 나누어서 우리가 현실이란 무엇과 같은지를 배우고 알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현실이 우리가 원하는 희망사항과 맞아 떨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 적는 간단한 실험을 한 번 해보자. 만약에 모든 사람이 어떤 현상이 생긴다는데 동의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현상을 '현실'이라고 부르기에 좋은 표시이다. 다른 한편으로 각 사람마다 어떤 현상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거나 그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현상을 '비현실'이라고 부르기에 좋은 표시이다.

그러나 이런 표시들만이 존재한다면, 아무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속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갈릴레오 이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실험은 항상 성공할 수 없고, 철학자는 무엇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를 알아내려면 다른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그녀는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의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고, 그것들의 가치를 판단해야한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그녀는 체계적인 의심을 적용한다. 그/그녀는 어떤 현상이 비현실이라는 태도를 지닌 채, 그에게 그 현상이 정말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만큼의 이유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철학에 입문하려면 더 많은 내용을 말해야 하겠지만, 여기에 적힌 이것이 철학에 대한 나의 견해이다. 아마도 내일이 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의 핵심에 무엇이 현실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희망이 놓여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그런 희망이 우리가 더 철학에 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

"철학적 체계는 오직 그들의 설립자에게만 전적으로 참이다. 모든 철학자들은 항상 하나의 큰 실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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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은 풀 수 없는 철학적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철학자들이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이 등장해 그들의 주장에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자신이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풀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후대 철학자들이 지닌,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풀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문제의 요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철학의 탄생에서부터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종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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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질문: 신앙과 이성은 양립가능한가? 우리는 신이 존재하는지와 그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아는가? 신은 왜 악을 허용하는가? 악의 존재는 신의 부재를 보여주는가? 신의 존재는 자유의지와 선택을 배제하는가?

이 항목에서 사용자께서는 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 안셀름의 철학을 소개받으실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었습니다. 플라톤의 거대한 존재의 사슬을 취해 그것을 신의 선으로 대체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합리적 기초를 발견했습니다. 스펙트럼의 다른 쪽 끝에는 안셀름이 있습니다. 안셀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논증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신이 거기에 존재해야만 한다는 논리적 필연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신의 존재에 대한 플라톤적인 정당화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정당화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겉으로 다르게 보이는 두 가지 사유의 방법을 종합하려고 했고, 종교에 좀 더 통일된 철학적 배경을 제공하려 했습니다.

교육 과제: 입문에서 사용자께 드린 숙제를 잊지 마세요. 좀 더 멀리 나아가면 좀 더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연습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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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과제: 인식론: 지식에 대한 공부.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때'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실제로 '학습'하는가? '진리'는 무엇인가? 참은 모두에게 언제나 참인가(객관성) 아니면 문화에 따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상대주의), 아니면 또다른 무엇인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도대체 그 일을 알 방법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중세 시대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인식론은 철학적 개념의 발전에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 이전에 인식론은 철학의 여러 분야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근대 초기를 지배했던 인식론적 토대는 그 뿌리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두고 있었다. 플라톤은 합리주의의 조상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합리주의는 참된 지식이란 그것이 오직 이성 하나에 의해서 도달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을 지녔을 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덧붙이면 합리주의의 입장에서, 우리의 지식이란 모든 사람이 스스로 알든 모르든 간에 이미 마음 속에 갖고 있는, 타고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등장한 경험주의는 합리주의와는 많이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경험주의는 감각을 부인하기 보다는, 객관적이고 관찰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고 이성을 사용한다. 경험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입력된 것들에 대한 지식을 지닐 수 있다.

교육 과제: 다시 한번 연습하세요, 연습하세요, 연습하세요. 사용자께서 자신이 배운 것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배운 것을 확장시켜보는 것, 그것이 정말 최고의 방법 입니다.

마음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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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과제: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몸과 분리되는가? 마음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인가 아니면 비물질적인 것인가?

교육 과제: 제가 이것을 다시 말해야만 합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사용자께서 과제를 만들어 내신다면, 저는 사용자께서 남의 마음을 끄는 대화의 가치를 아신다고 확신합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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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그것을 하려고 한다면, 이 만화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거기 그렇게 있기로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 볼 문제: 우리의 결정은 외부 요소에 의해서 일어나는가? 만약에 우리가 잠재적인 결과에 대해 내린 '결정'이 그것의 잠재적인 결과에 의해 '일어나게' 되는 사실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자유의지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의 행동을 순전히 기계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전지전능한 신의 관념을 인정할 때 우리는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은 운명인가, 우리의 미래는 다 정해진 것인가?

교육 과제: 추측해 보십시오! 지금 저는 사용자를 위해 새로운 무엇을 지니고 있습니다.

  • 대본: 사람 A 와 사람 B. 사람 A는 혼자 방 안에 앉아있다. 사람 B는 그와 대화를 하고 싶다. 사람 B가 방으로 들어온다; 문을 닫는다;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 C가 홀로 걸어와 방 밖에서 방문을 잠근다. 사람 A와 사람 B 모두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자유의지대로 행하고 있는가? 그들이 함께 방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면, 그들은 더 이상 방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방을 떠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없다. (존 로크가 쓴 인간 이해에 관한 에세이. Book II-Of Ideas. Chapter XXI-Of Power. Section 10. [1])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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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질문: 객관적인 도덕은 존재하는가? '옳은' 것은 무엇이고 '그른'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 왜 나는 그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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