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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역사서[편집]

고구려에는 《유기》라는 역사서가 있었는데, 후일 영양왕 때 대학 박사 이문진에게 《신집》이라는 역사서를 만들게 합니다.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부터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문진에게 명하여 옛 역사책을 요약해 신집 5권을 만들게 하였다. 국초에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할 때에 어떤 사람이 사실을 100권으로 만들어 이름을 유기라고 하였는데, 이 때 와서 이를 고쳤다.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8, 영양왕 11년

백제는 근초고왕 때에 고흥이 서기를 편찬합니다. 서기에 대한 언급은 다음의 기록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백제는 나라를 세운 이후로 문자로 일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 때 박사 고흥을 얻어 서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흥은 다른 책에 언급된 적이 없으므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 《삼국사기》 백제 본기 2, 근초고왕 30년

신라는 진흥왕 때에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합니다. 국사에 대한 언급은 다음의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6년 가을 7월 이찬 이사부가 아뢰기를,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해 포폄을 만대에 보이는 것이니, 이를 편찬하지 않는다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옳게 여겨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선비를 널리 모아 편찬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본기 2, 진흥왕 6년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 당시는 각국의 전성기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각국의 역사서 편찬은 국가가 융성한 상태이고, 중앙 집권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편집]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의 역사서로는 8세기 초의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 《고승전》, 《한산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주체적으로 문화를 인식했다는 평을 받는데, 김대문이 쓴 책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김대문은 신라 귀족 가문의 자제로서 704년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고, 전기 몇 편을 지었다. 김대문이 쓴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 한산기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 《삼국사기》 권 46, 열전 6, 설총 부 김대문

역사 서술 체계[편집]

역사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표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들이므로, 되도록이면 숙지하는 것이 이해하는데 편리할 것입니다.

  • 기전체 : 역사를 본기, 세가, 열전, 지, 연표 등으로 나눠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와 같은 역사서가 있습니다.
  • 편년체 : 역사를 시간 순으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잘 아시는 《실록》이 이에 해당합니다.
  • 기사본말체 :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연려실기술》과 같은 역사서가 이에 해당합니다.

고려의 역사서[편집]

고려 초에는 《왕조실록》과 《7대실록》이 있었다고 합니다. 《7대실록》의 경우는 거란 침입 후 편찬했다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고려 중기에는 김부식이 쓴, 널리 알려진 《삼국사기》가 있습니다.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으로 쓰여진 역사서로, 현존하는 최고(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기전체로 서술되어 있고, 신라 계승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상 전하께서 말씀하시길, "... 고기에는 문자가 거칠고 잘못되고 사적이 빠져 없어진 것이 많으므로, 임금의 선악이나 신하의 충성스러움과 사악함, 국가의 안위나 인민의 이란 등을 모두 잘 드러내어 뒷사람들에게 경계를 전할 수 없으니 마땅히 삼장의 인재를 얻어 한 나라의 역사를 이룩하고 이를 만세에 남겨주는 교훈으로 하여 밝은 별과 같이 밝히고 싶다."라고 하셨다.


무신 집권기에는 각훈의 《해동고승전》과 이규보의 《동명왕편》이 있습니다. 《해동고승전》은 삼국시대 승려 30여명 정도의 전기를 수록한 책이고, 《동명왕편》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반영한 자주 의식이 드러나는 역사서입니다. 《동명왕편》은 고구려를 건국하였던 주몽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서사시로 볼 수 있습니다.

동명왕의 사적은 변화신이하여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시킬 일이 아니요, 실로 나라를 세운 신의 자취인 것이다. 이 일을 기술하지 않는다면 후세에 무엇을 볼 수 있으리요. 이런 까닭으로 시를 지어 이를 기념하고,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나라의 근본이 성인의 나라임을 알게 하려 할 뿐이다.


원 간섭기에는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있습니다. 원 간섭기인 만큼, 자주 의식을 표현한 역사서들입니다.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쓰여 있는데, 단군의 건국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로 볼 때,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충렬왕 때 저술했으며, 설화나 전설, 민담과 같은 것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제왕운기》도 역사를 단군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또, 자주 의식의 표현이 특징인데, 《제왕운기》는 중국사도 대등하게 적어 중국과 우리의 역사를 대등하게 파악했다는 점에서 자주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저 옛날의 성인께서는 바야흐로 예악의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설교할 때 곧 괴력난신은 얘기하지 않았다. ...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로운 데서 탄생했다는 것이 무엇이 괴이하랴. 이런 신이한 바를 모든 편에 실었으니, 뜻이 여기에 있다.

– 《삼국유사》

고려 말기에는 이제현의 《사략》이 있습니다. 성리학적 유교 사관이 나타나는데, 정통 의식과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 초의 역사서[편집]

조선 초기에는 《실록》, 그리고 고려사를 정리한 정도전의 《고려국사》, 《고려사》, 《고려사절요》, 서거정 등이 쓴 《동국통감》, 박상의 《동국사략》 등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역사서들은 대체적으로 조선 왕조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측면이 강합니다. 또, 성리학적인 통치 규범과 관련한 것들이 많습니다.

《실록》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춘추관 실록청에서 편년체로 작성됩니다. 국왕이 죽으면 다음 국왕 대에 전 국왕에 대해 사초, 시정기 등을 정리하여 실록을 편찬하지요. 그 다음으로 고려사를 정리한 《고려국사》, 《고려사》, 《고려사절요》가 있습니다. 《고려사》의 경우는 기전체로 쓰여 있고, 《고려사절요》의 경우는 편년체로 쓰여 있습니다.

서거정의 《동국통감》은 편년체로 쓰였는데,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박상의 《동국사략》은 사람의 정치 및 문화의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또한 단군에서 삼국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상께서 선왕의 계획을 받들어 서거정 등에게 《동국통감》을 편찬하여 올리라 하였습니다. ... 삼국부터 여러 역사책에서 사실을 뽑고 중국의 역사 서적들을 모아 편년체와 기사본말체를 사용하였습니다. 범례는 모두 《자치통감》에 따랐습니다. ... 삼국이 병립하였을 때는 삼국기, 신라가 통일한 뒤에는 신라기라 하였습니다. 고려 때는 고려기라 하였고, 삼국 시대 이전 시대는 외기라 하였습니다. 천 사백 년 동안 국세의 이합과 국운의 장단 및 임금의 잘잘못과 정치의 성쇠를 모두 거짓 없이 적었습니다.

– 《동국통감》

조선 후기 역사서[편집]

조선 후기에는 실증적인 역사 서술이나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발해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익은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역사 서술을 지향했으며, 중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의 체계화를 주장했습니다. 안정복은 이러한 이익의 역사 의식을 계승한 사람으로, 《동사강목》을 지었습니다. 안정복은 이 책에서, 고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서술했고, 우리 역사의 독자적인 정통론을 제시했습니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을 쓰는데, 이 책은 조선시대의 문화와 정치를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은 기사본말체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또, 한치윤은 《해동역사》를 지었습니다. 한치윤은 이 책을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참고하였는데, 이는 민족사의 인식의 폭을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종휘는 《동사》에서 고구려의 역사를 연구했으며, 유득공은 《발해고》로 발해의 역사를 연구하였습니다. 이들은 한반도 중심의 사관을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에서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였음을 밝혔습니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한 다음, 김씨가 남방을 차지하고 대씨가 북방을 차지하고는 발해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남북국이라고 한다. 남북국에서는 남북국의 사서가 있었을 텐데, 고려가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저 대씨가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은 어떤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이다.

– 《발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