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고등학교/한국사/개항과 불평등 조약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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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편집]

강화도 조약의 배경은 먼저 대외 정책의 변화에 있습니다. 당시 흥선 대원군이 하야하고, 1873년 고종의 친정 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 민씨 정권이 수립되고,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완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당시에, 통상 개화론자인 박규수, 오경석 등이 문호 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바로 이 때, 일본이 1875년 운요호 사건으로 도발하게 됩니다. 조선에 강압적으로 문호 개방을 요구한 것입니다. 결국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맺어집니다. 강화도 조약은 '조일 수호조규'라고도 합니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배제할 목적으로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였습니다. 또한, 침략의 거점을 위해 조선의 세 개 항구를 개항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권 침해가 다분한 해안 측량권, 치외 법권을 허용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불평등 요소로,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임을 나타냅니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해안 측량권이나 치외 법권 등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으며, 일본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편집]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1876년, 조일 수호 조규 부록이 체결됩니다. 일본인 활동의 범위를 개항장 10리로 제한하고, 개항장에 일본인 거류지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개항장 내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습니다.

조일 무역 규칙[편집]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1876년, 일본의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규정한 조일 무역 규칙이 맺어집니다. 또한, 조선 양곡을 일본으로 무제한 유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편집]

1882년 맺어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배경은 제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던 김홍집이 '조선책략'이라는 책을 가져온 것에서 시작됩니다. 조선책략이 유포된 이후,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의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맺어지는데, 이 이면에는 청이 조선의 종주국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내용에는 강화도 조약과 마찬가지로 치외법권을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최혜국 대우를 규정했으며, 거중 조정 항목을 달았고, 낮은 비율의 관세 조항을 설정하였습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서양과 체결한 최초의 조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역시 강화도조약처럼 불평등 조약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서양 국가와의 수교[편집]

영국, 독일과의 수교는 1883년, 이탈리아, 러시아는 1884년에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프랑스와 가장 늦게 조약을 체결했는데, 천주교 포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 때문입니다. 조프 수호 통상 조약은 1886년에 맺어졌습니다. 이러한 준비되지 않은 문호 개방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하였고, 열강의 침략을 격화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