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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어와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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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eld pattern of the Western Roman infantry unit Armigeri Defensores Seniores (c. AD 430) @Wikipedia

고대에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의 게르만족과 동쪽 끝의 우리 조상 사이에 어떤 역사적 만남이 있었을 수 있다. 강자들 또는 살아남은 자들이 쓴 역사는 흔히 거짓말을 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북방에 훈족이 갑자기 나타나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일으키는 한편 그들과 합세하여 로마 제국을 압박했다. 그들이 흉노족이었다는 가설이 유력해 보이지만, 훈족은 흉노족이 아니고 광개토대왕 무렵의 고구려인이었을 가능성도 가설로서 별로 부족함이 없다. 고구려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로마 제국의 문턱이라 할 수 있는 사마르칸트까지 사신을 보낸 바 있다.

훈족은 또 로마 제국의 북방 도나우 강변을 지키던 용병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도나우 강의 남쪽은 로마 제국의 용병 그리고 북쪽은 훈 제국의 장병. 그런데 남쪽의 용병들이 사용했던 오른쪽의 방패의 태극 문양을 보면 그들은 흉노족보다는 고구려인이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게르만족은 훈족이 물려준 유산은 무엇이든 지워 버리고 잊고 싶을 것이다. 유럽에서 패권을 잡은 게르만족이 위대하게 보이려면 훈족에 관한 모든 것은 역사적 무대에서 사라져 줘야 한다. 훈족의 유산을 싹 지워버리고 싶은 것은 게르만족 뿐만 아니다. 로마 교황청도 그런 입장이라고 나는 믿는다. 교황청 지하실 서고의 어딘가에 훈족과 관련된 정보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훈족은 마냥 전쟁을 일삼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로마 제국과 평화 공존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훈족을 포함한 로마제국의 용병이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로마 제국의 용병들이 사용하던 무극 또는 극일을 뜻하는 태극 마크를 그려넣은 방패가 그 두번째이다. 로마 제국의 군대는 이미 썩을 대로 썩고 약해져서 훈족 군대를 당해낼 수 없었음에도 아틸라가 그것을 멸망시켜 버리지 않은 것은 아틸라가 평화 공존을 바랬던 세번째 증거다. 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누나 호노리아의 청혼을 받아들여 그녀와 결혼하려 했던 것은 그 네번째 증거다. 그가 호노리아와의 결혼에 반대하자 아틸라가 그를을 겁박하려고 진군하던 중 황제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교황 레오 1세가 말을 타고 있는 아틸라를 설득하자 두말 없이 그대로 철수해버린 사건이 그 다섯번째 증거다. 아틸라가 결국 로마 제국의 일디코와 결혼했던 것은 그 여섯번째 증거다. 아틸라와 그의 제국은 결국 그 마지막 증거 때문에 망했다. 나는 아틸라가 로마 제국에 의해서 결혼한 날 독살당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로마 제국도 결국 얼마 후에 훈족과 가까운 게르만 출신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결론적으로, 유럽인들이 훈족을 더할 수 없은 악당들로 묘사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들 수 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로마 제국 용병들이다. 그들은 조금씩 다른 태극 문양의 방패를 들었는데, 태극의 궁극적 뜻이 과연 무엇이었나? 음양 대립은 궁극적 대립이었나? 결코 그게 아니었다. 태극은 궁극적 하나 즉 무극인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도나우강 북쪽의 훈족 병사나 그 남쪽의 훈족 용병이나 둘다 훈족 편이니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호소가 그 방패 문양에 담겨 있었더는 게 아니겠는가?

다음부터 나는 훈족이 한국인의 조상의 한 갈래인 고구려인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국어와 게르만어 낱말의 유사성을 예를 들어 드러내고자 한다. 나는 지난 10여년간 이 문제를 연구해왔고, 그 대부분은 en.wikiversity.org/wiki/Korean/에 수록되어 있다.

참조: 색인